⠀외로움은 여러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선천적인 외로움, 만성적인 외로움, 순간적인(급성) 외로움 등등. 원인이 비교적 명확하고 짧게 지속되는 순간적인 외로움은 누구나 느낄 수 있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어려서부터 항상 외로운 아이였다. 선천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성적인 외로움을 매 순간 느껴왔던 것 같다. 원인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 당시에는 잘 몰랐으나, 다 커버린 이제는 안다. 내가 집에서 제대로 사랑받지 않았다는 것을. 초등학생 때의 어느 날, 내가 하루에 한 번 씩은 꼭 아버지께 혼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자식과의 다방면의 관계를 맺고 싶어하셨지만, 그 방법은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어린아이가 보기에 아버지는 그저 엄격하고 무서운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우리 부모님과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고, 나는 부모님과 친구처럼 지내는 다른 가족들이 늘 부러웠다. 부모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조부모님과도 다르지 않았다. 평생을 살아남는 데에만 열중하신 조부모님은 좋은 성적을 요구할 때만 말씀이 많으셨다. 거기다 관계 맺는 법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교우관계도 좋지 못했다. 그러니 나는 누구보다 외로움과 친한 아이였으리라.
⠀그런데 작년 어느 순간, 나의 만성적인 외로움이 마치 원래부터 없던 것처럼 사라졌다. 이건 내 삶 전체에 있어서 정말 큰 변화였다. 오랜 시간 계속해서 느껴오던 외로움이 아예 없어지다니, 보통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무엇 때문일까. 좋은 친구들을 만나 깊고 제대로 존중받는 인간관계를 맺어서 그런걸까.
⠀만약 그것이 유의미한 변화였다면, 내 만성적인 외로움은 일종의 결핍이 아니었을까? 관계의 결핍. 어린 시절부터 쌓여있던 내 관계에 대한 욕구가 이제는 충분히 충족되어서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부모님,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겠지만 나는 자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가족 간의 관계에 신경을 많이 쓰는 부모님이 아닐까 싶다. 또 그런 부모님을 가진 사람들은 감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만성적인 외로움을 겪지 않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외로움이라는 건 꽤 고통스러우며, 한껏 외로워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막다른 길에 놓인 사람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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