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페 프렌즈 사장님께 추천받아서 읽게 된 책. 다 읽고 나면 한꺼번에 몰려오는 어떤 감상이 있다는 사장님의 추천은 희곡을 처음 접하는 나도 책을 바로 찾아보게 만들었다. 근처 서점에는 없는 책을 찾아보니 교양독서회 소유 서적이었다. 바로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과연 무슨 내용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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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충실하다. 말 그대로 두 주인공이 고도를 기다리는 내용이다. 그런데, 고도의 정체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읽으면서 계속 궁금했고, 계속해서 고도는 누구일까 생각했다. 분명 고도를 만나고, 그는 상상도 못한 정체 ㄴㅇㄱ! 하면서 나에게 충격을 안겨주며 끝나겠지? 싶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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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고도를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 끝이 난다. 작품은 이틀만 다루지만 그들은 언제부터인지 모를 옛날부터 고도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그에 따라 고도의 정체 역시 독자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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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황했다. 허무해서 웃음이 나왔다. 반전이 없는 것이 반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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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용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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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은 고도를 기다리며 무얼 했는가? 고작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장난을 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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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뒤에는 작품 해설이 있었다. 안 읽으려던 작품 해설을 다 읽고 나는 이내 깊은 생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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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는 다 읽었다 싶을 때 부터 읽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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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도를 기다린다.
2. 그 동안 서로 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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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는 누구인가? 무엇인가?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맥락을 통해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맥락은 고고와 디디의 대화와 기다림에 있다. 그렇다면 기다린다는 것은? 그들은 고도를 찾아나서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고도를 만나는 것은 고도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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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동안 서로 떠든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도무지 가만 있질 않는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야기한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그들 존재가 없어지기라도 하는 듯이. 이것은 포조와 럭키도 마찬가지다. 포조는 누구도 듣질 않는데도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포조의 늙은 노예인 럭키는 포조에게 인정받고 싶어 발버둥치며 살아내고 있으며, 어쩌다 말할 기회가 주어지면, 미친듯이 이어지지 않는 단어들을 나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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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지?
존재의 증명이다.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우리. 매일 쓸데없는 소리를 주고 받는 친구는 그저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줄 뿐이다.
고고와 디디가 서로 떠나자면서 끝까지 움직이지 않으려는 모습은, 마치 내가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을 쉽사리 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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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과 2번은 이어지는가? 다시 고도를 알아보자.
고도가 나타난다고 자기존재의 증명이 마무리되는가? 고도를 만나면 자신의 존재가 증명되는가? 아니다. 포조와 럭키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자기존재를 증명하고자 한다.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되고 나서야 그들은 존재증명의 집착에서 벗어났다. 모든 것에 태연해졌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그런 달라진 포조의 모습을 느끼면서도, '고도'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도를 기다린다는 사고에 얽매이면서, 디디와 고고는 2막의 포조처럼 변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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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고도는 지루한 기다림의 끝이고, 곧 해방이다. 그들은 고도를 만나면 존재의 증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한다. 그렇다면 고도는 무엇인가?
누구는 빵이라 그런다. 빵? 잘 모르겠다. 시대에 맞게 바꾸자면 배고파 죽겠는데 오지 않는 짜장면?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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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고도를 '이뤄 내면 자신의 존재가 증명되고, 행복해지리라 믿는 어떤 것'이 아닐까 싶다. 고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또 있을수도 없을수도 있다. 누구에게는 금전적 성공이나 학문적 성공이며, 누구에게는 어렵디 어려운 고시의 합격이다. 과거의 나에게 고도는 의대 진학이었다. 현재의 나에게는? 없나 싶었지만.. 나에게도 없지는 않네. '사회적 욕망의 충족'이 고도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사뮈엘 베케트는 질문을 던진다. 고도를 기다리며 살 것인가? 언제까지 고도를 기다릴 것인가? 고도를 기다리며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이 과연 행복한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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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담고 싶다. 미래의 편지를 받은 나는 후회의 날들을 일찍 청산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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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만 기다리며 살지 말자.
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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